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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P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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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0대 락명반

LP 포럼 시리즈

 

 11. The 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67)

 수 십 년에 걸쳐 음악 팬들의 귀에서 귀로 검증된 록 음악사상 최고의 명반. '컨셉트 앨범의 효시', '반기성과 사이키델릭의 온전한 시대상황이 담긴'...등등, 지금까지도 이 앨범을 놓고 쏟아지는 수 없는 담론은 역설적으로 이 앨범의 시대를 초월하는 지위를 말해준다.
  타임지는 이 앨범에 대해 '유럽과 미국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혁명화시키는 데 기여한 온화한 무정부주의를 놓치지 않으면서, 비틀즈는 좀더 예술적 지평으로 올라갔다'고 평했다.
  비틀즈는 이 작품을 통해서 팝의 예술성이란 최고의 수확을 거두었다. 음반 기술적인 면에서도 획기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팝의 일반 틀을 과감히 부수어 교차리듬(Cross Rhythms)을 믹스했고, 바하에서 스톡하우젠에 이르는 위대한 작곡가들이 사용한 클래식 연주 악기를 활용, 마치 관현악 연주와 같은 웅장함을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지휘아래 비틀즈는 전자 음향 효과를 극대화 시켰고, 테잎의 역회전과 속도 조절 등 믹싱의 갖가지 신기술을 총 동원했다.
  사랑의 찬가가 된 〈She's Leaving Home〉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극찬한 곡이기도 하며, 〈When I'm Sixty four〉, 〈Lovely Rita〉, 〈Fixing A Hole〉같은 곡으로 예술성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앨범 속에는 고독과 현실 세계의 탈출, 동양의 종교 등에 고양된 젊은이들이 심취했던 LSD, 마리화나의 환각 세계와 그 필연적 결과물이랄 수 있는 '60년대의 사이키델릭 시대 정서가 담겨 있다. 또한 당시를 대표하던 인물들로 채워진 앨범 재킷에서 세대간의 긴장과 '60년대의 고독감을 읽을 수 있다.(박신천)

 

 12. Pearl Jam

       [Ten] (91)

 '90년대 미국 젊은이의 대변인은 누구인가? 도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으로 이어진 미국 록 음악은 얼터너티브 시대에 이르며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 복합적인 장르 혼합, 지역적인 스타일 분화, 주류와 비주류의 편가르기. 이 모두가 '90년대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표 현상들이다. 그런지는 얼터너티브란 단어가 매체에 파생될 즈음 거의 동질의 의미로 알려졌다. 메탈이 아닌 록, R.E.M.이나 스미스와는 기본 골격이 다른 느낌. 얼터너티브는 새로운 주류 그런지를 탄생시켰고, 그런지는 시애틀을 록의 메카로 세상에 알렸으며, 시애틀은 펄 잼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뤘다.
  사실 데뷔 당시 펄 잼은 정체가 모호한 밴드였다. 보컬 에디 베더는 시애틀이 아닌 캘리포니아 출신이었고, 멤버들 모두 긴 활동을 예상하고 밴드를 결성했다기 보다는 잠시 쉬어가는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운드가든 친구들과 프로젝트 템플 오브 더 독을 결성하기 전후로 해서 펄 잼은 급조됐고, 그런 까닭에 맴버 모두 자신의 사이드 프로젝트-스톤 고사드의 브래드, 제프 에이먼트의 쓰리 피쉬가 그 중 대표적-을 운영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현재도 물론 운영 중이다). 다년 간의 마이너 시절을 통해 실력배양에 바빴던 너바나와 비교하자면 펄 잼은 시작부터 올스타 팀으로의 면모가 강했던 셈이다.
  이들은 앨범 발매전부터 영상 매체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언플러그드' 라이브를 펼쳤고 시애틀의 보고서 영화 〈싱글스〉에 투입됐다. 결국「Ten」은 데뷔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히트와 시회적 파문을 몰고 왔다. 펄 잼의 넉장 앨범 중 유일하게 넘버 원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나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하는 미국인의 염원을 풀어주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대중 스타로 거듭난 펄 잼은 '93년 MTV 비디오 어워드의 화두로 등장한 〈Jeremy〉(최근 본 조비 주연의 영화「Destination Anywhere」를 선보인 마크펠링턴 감독)를 끝으로 더 이상 뮤직 비디오 만들기를 포기했다. 이것은 음악적 본질을 흐리게하는 영상 매체에 대한 양심이기 이전에 음악 자체에만 전념하겠다는 팬들에 대한 맹세의 의미였을 것이다.
  펄 잼의 데뷔 앨범은 시애틀 그런지 올스타의 상징이자, 오버 그라운드 밴드의 인디적인 고민을 담은 초라한 앨범이다. 최악의 앨범 재킷, 최상의 원초적 울부짖음과 더불어.(이종현)

 

 13. Jeff Beck

       [Blow by blow] (75)

 우리나라 뮤지션들과 제프 벡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 장르에 손을 댄다는 것. 그렇다면 그 둘의 다른 점은? 전자가 한 앨범에 모든 장르를 쑤셔넣는 반면 후자는 일생 동안 여러 장르를 탐구한다는 것. 전자가 어정쩡하게 수많은 장르의 겉을 핥는 반면, 후자는 하나를 할 때마다 확실하게 한다는 것. 전자는 스타일이 바뀔 때마다 자기 색깔도 바뀌지만 후자는 어떤 스타일에서건 누가 들어도 제프 벡임을 알 수 있다는 것 등등...
  각설하고 「Blow By Blow」는 제프 벡이 1975년데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손잡고 만들어 낸, 거의 최초의 본격적인 록 기타 연주곡 앨범이다. 인스트루멘틀임에도 차트 성적 및 판매고에서 호조를 보이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80년대에 시작된 잉베이나 스티브 바이, 조 새트리아니 등 기타 인스트루멘틀 붐의 효시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전까지 그가 해 오던 로큰롤내지는 블루스 록 스타일에서 과감히 변화를 시도, 록과 재즈의 크로스오버를 완성도 높게 실현해 낸 앨범. 그 유명한〈Cause We've Ended As Lovers〉도 바로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이 앨범이 좋다면 이어지는 같은 성향의 두 앨범, 「Wired」와「There & Back」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후로 제프 벡은 하드 록을 필두로 각종 전자 사운드의 도입, 그리고 컨트리/로커빌리까지 여러 가지 실험을 거듭해 오고 있지만 그의 곡, 그리고 그의 연주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제프 벡'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명인과 평민의 차이점인 것이다.(윤병주)

 

 14. John Lennon

       [Plastic Ono band] (70)

 이 앨범보다 훌륭한 '그룹 출신 뮤지션의 솔로 데뷔작'은 없을 것이다. 비틀즈 시절과는 전혀 질감이 다른 존 레논의 자기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비틀즈의 잔영을 담고가 그룹의 대표성을 견인하려 했던 폴 메카트니와는 이 점에서 다르다. 나중 요코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이 앨범은 폴의 「Band On The Tun」이나 「McCartney」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우린 가능성을 획득했다. 그 가능성은 또한 '계산된' 것이 아니다. 존은 그런 사람이 못되었다."
  앨범은 사운드의 파노라마로 〈Mother〉의 최소주의, 〈Love〉의 멜로디 취향, 〈Well Well Well〉의 소음 등이  '정갈하게' 교차된다. 〈Well Well Well〉은 당시의 '인더스트리얼 뮤직'이라 해도될 만큼 진보적이다. 수록곡 중 더러 강렬한 사운드가 담긴 이유는 그무렵 존이 체험했던 아더 야노프 박사의 '원시적 외침(primal scream)' 요법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앨범을 만든 주 목적이 이것이다.
  본인의 체험과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솔직히 묘사한 측면이야말로 이 앨범의 백미. '신은 고통을 재는 컨셉트일 뿐'이라고 입을 떼는 〈God〉이나 '노동 계급의 영웅이 되고 싶으면 나를 따르라'는 〈Working Class Hero〉와 같은 강성(强性)의 이데올로기 송은 어떤 아티스트에게서도 목격하기 어렵다.
  〈Mother〉에서 시작해서 〈My Mummy's Dead〉로 끝나는 수미상관 등 앨범의 구성력도 뛰어나다. 존의 영혼과 그것의 표현력이 번뜩이는 수작. 이것은 '육필수기'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들어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명반이다.(임진모)

 

 15. Cream

       [Wheels of fire] (68)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 음악이 귀에 와 닿을 때의 느낌이다. 흔히 '감동'이라는 말로 표현이 되는 그 느낌의 질과 양에 의해 개인적인 음악에의 경험과 판단은 이루어진다. 형식과 테크닉에 관해서라면, 그것은 음악(音樂) 외적인 요소이다. 곡의 진행 방식과 조(調)의 편성, 화성(和聲)의 배치 등에 있어 형식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몇몇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들으며 아무런 감동도 얻지 못하는, 오히려 짜증스런 소리의 조합처럼 여겨지는 까닭은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소위 '클래식 록'이라 부르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등장한 숱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기까지, 대부분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그들이 음악을 쓸 때 그 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아티스트들의 영감(靈感)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말로 표현 못할 벅찬 기쁨을 느낀다. 물론 이 또한 개인적인 성향과 기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때의 음악에서 지금과의 유사점을 찾아내고는 놀라는 경우가 있음은 인정할 것이다.
  록의 거장들 세 명이 이루어 놓은 이 성과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에릭 클랩튼이 주는 감동을 능가하는 연주는 찾아보기 힘들고, 각각의 곡들 특히 〈Toad〉에서 들을 수 있는 진저 베이커의 드럼 솔로는 하나의 교본과도 같다. 물론 다재다능한 잭 브루스의 역량이 없었다면 이 앨범은 탄생될 수 없었을 것이다. 3인 편성의 밴드 구성이라는 외형적인 요소 외에 블루스 록, 하드 록, 싸이키델릭, 그리고 아트 록에 이르기까지 브리티쉬 록에 있어 하나의 '원류(源流)'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작품이다.(김경진)

 

 16. Jimi hendrix experience

       [Electric ladyland] (68)

 '록 기타의 혁명아' 지미 헨드릭스의 세 번째 공식앨범. 아주 가끔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들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들을 일컬어 '혁명아' 또는 '천재'라고 한다.
  이 앨범은 지미 헨드릭스와 그 기타 혁명의 편린들이 때로는 예리한 바늘처럼, 때로는 스모그처럼 몽롱하게 청각을 자극한다.
  「Electric Ladyland 1」과 「Electric Ladyland 2」의 더블 LP로 발매된 이 기타 실험의 집대성판에는 시대를 앞선 첨단과 원시, '60년대 중반의 반전 시위과 LSD의 환각이 사이키델릭의 소음과 매캐하게 얽혀있다. 하울링을 기타 픽업으로 잡아내고 다시 스피커로 되돌려 음이 끊기지 않고 순환하게 만드는 피드백의 '정교한 하드웨어의 메카니즘' 위로 헨드릭스의 보컬이 흐느적거리며 떠다니고, 퍼즈와 와우 와우, 트레몰로 암을 이용한 음의 왜곡이 인도하는 사이키델릭의 환각은 그 혼돈의 시절을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포함해 생전에 그가 남긴 3장의 앨범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애증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헨드릭스는 기타 혁명의 장(場)을 열었지만, 동시에 향후 기타로 새로운 것을 탐구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놓지 않았다. 그는 기타로 실험가능한 거의 모든 것을 해내고 떠나버린 것이다. 헨드릭스의 경배자들의 찬가가 되어버린 〈Voodoo Chile〉,〈Have You Ever Been〉,〈Gypsy Eyes〉와 함께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록의 고전으로 연주되고 있다.
  이펙터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틀로 바뀌었을뿐, 아직도 많은 록 기타리스트들은 이미 30년전에 그가 끝낸 실험의 결과물을 답습, 확대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일렉트릭 기타의 지존'으로서의 지미 헨드릭스의 지위는 여전히 유효하다.(박신천)
 

 

 17. Yngwie malmsten

       [Yngwie malmsten's rising          force] (84)

 이 앨범이 여기 이 리스트에 한 자리를 -그것도 상위에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그 엄청난 파급력에 있다. '8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싹을 틔우기 시작한 국내 헤비 메탈씬에 있어서 잉베이 맘스틴이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기타리스트의 상징이었고, (결과론이긴 하지만) 그것은 내적 성숙을 위한 통과제례의 의미와 다름 아니었다.
  물론 잉베이 맘스틴이 가져온 충격은 엄청났다. 6연음, 8연음의 고전적인 속주 패턴을 비웃는듯한 -그야말로 무한 질주의 핑거링 스피드와 클래식에 기초한 새로운 스케일/모드 패턴은 기타 플레이의 새로운 가능성임에 분명했다. 파급력 또한 그 연주 스타일만큼이나 스피디해서, 한동안은 전세계의 기타리스트들이 잉베이 신드롬의 노예를 자처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바하와 지미 헨드릭스의 결합'이라는 잉베이의 원대한 목표에 있어서 이 앨범은 분명 최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발표된 작품들이 수가 보이는 뻔한 한계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감성과 정신의 부재가 록의 이념에 위배된다'거나 '자기 잘난 줄만 아는 지독한 에고이스트'라는 평가가 잉베이를 고립시키기도 했지만, 그의 그 신앙같은 자기 확신과 외곬의 행로는 '90년대의 펑크 키드들이 그토록 목놓아 역설하는 인디 정신의 본질에 다름 아니다.(박은석)

 

 18. Pink floyd

       [The wall] (79)

 핑크 플로이드라는 한 밴드의 역사와 사운드의 변천 과정을 놓고 볼 때 본작은 분명 기존의 작품들과 커다란 차별성을 가지는 '이질적'인 앨범이다. 몽롱한 상태에서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 -우주적인 꿈-은 간데없이, 「Animals」(77)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보다 직설적이고 냉소적인 가사와 사운드가 이 작품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즉, 로저 워터스라는 개인의 경험과 유년 시절의 콤플렉스가 그 자신의 가치관에 실려 음악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향력은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용됨으로써 다른 멤버들과의 돌이킬 수 없는 감정 불화로 이어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릭 라이트의 탈퇴와 로저의 솔로 앨범과 다름없는「The Final Cut」(83)의 발표, 그리고 밴드의 해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불러오게 된다.
  하지만 앨범 자체는 여러 요소들과 맞물려 많은 이들로부터 핑크 플로이드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뜬구름 잡는 소리보다는 사회가 가진 치부를 직접적으로 건드린 그 방식이 사람들에게 더욱 와 닿았던 듯 싶다). 기승전결식의 구조와 일정한 이야기 전개를 가진 내용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컨셉트 앨범으로, 그 당시 밴드의 대규모 투어와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로저 워터스 개인의 이름으로 행했던 공연에서도 볼수 있듯, 작품은 하나의 록 오페라 또는 록 뮤지컬의 형식을 가진다. 아마도 앨런 파커가 작품의 영화화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별다른 '손질'없이도 그 자체로 각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김경진)

 

 19. The clash

       [London calling] (79)

 런던 펑크 씬이 배출한 최고의 걸작 앨범으로 '79년말에 발표되어 '70년대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작품이다. 그리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펑크 밴드 클래쉬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앨범 이전의 클래쉬는 과격한 가사와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를 구사하기는 했지만 아직 음악적으로 발전 단계에 있었고, 이 이후의 클래쉬는 덥(Dub)과 레게에의 집착이 심해진 만큼 평크로서의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말하자면 가장 위대한 펑크 밴드가 음악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크에 있었을때의 위대한 작품이다.
  타이틀 트랙인 명곡 〈London Calling〉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후 곡이 진행됨에 따라 레게, 록, R&B, 재즈, 로커빌리 등이 절묘하게 배합된 곡들이 계속 이어진다. 가사는 역시 클래쉬의 전매 특허인 정치적인 이슈들을 토해낸다. 대도시의 환경문제(London Calling), 스페인 내전 관련(Spanish Bombs), 빈부 격차(Brand New Cadillac, Lost In The Supermarket)등 당시 피끓는 젊은이들이었던 이들로서는 참을 수 없는 문제들을 그러나 데뷔 당시보다는 객관적이고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다. 당시 오랜 노동당 집권을 종식하고 새로 들어선 마가렛 대처 보수당 정권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이들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해내고 있다.
  사운드 적인 면에서는 이들의 공격 대상이었던 전 세대 로커들의 거창함과 복잡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쾌하면서 심플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모하기만 했던 섹스 피스톨스와 달리 전략, 전술의 개념이 확실한 클래쉬의 영민함이 번득인다. 앨범의 재킷은 기타를 무대에 내리 치고 있는 사진으로 되어 있어 역시 다분히 의도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아직도 이들에 대해 팬들이 갖고 있는 향수는 대단해서 항상 재결성 희망 밴드 부문에서 1위를 하고 있다. 〈London Calling〉은 '90년에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80년대 최고 앨범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리더인 조 스트러머는 이 앨범이 '79년 12월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정원석)

 

 20. Prince

       [Purple rain] (84)

 프린스는 음악적 능력을 검증 받기도 전부터 상스러운 뮤지션으로 평가절하됐고, 적어도 대중들에게는 혐오감을 주는 가수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 '섹스 중독증에 걸리지 않았으면 십중팔구 성적 결핍이 분명하다'란 여론이 지배적이었고, '정신 병원 진찰 요망'이란 외지 평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프린스를 얕잡아본 매스컴과 음해 세력들은 모두 '84년을 기점으로 살며시 프린스의 지지 세력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바로 '84년을 대변하는 앨범 「Purple Rain」때문이었다.
  「Purple Rain」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한 장의 영화 음악 이전에, 고만고만한 음악이 판을 치는 '80년대 초반을 평정하는 의미를 담은 중량감있는 앨범이 됐다. 마이클 잭슨이 상업적 파급력을 가지고 시대의 영웅 자리를 꿰찼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실력있는 뮤지션의 품귀 현상이 이어지던 팝 음악계의 공황기였다. 프린스는 프로듀서, 송라이팅, 노래, 연주는 물론 영화의 주연까지 맡은「Purple Rain」를 통해 완벽한 천재성을 피력했고, 대규모 사단(레볼루션, 더 타인, 실라 이, 시나 이스턴)을 지휘하며 팝 음악계에 많은 볼거리와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음악적인 혁신과 파급 효과는 상업적인 성공으로도 이어져 앨범이 24주가 차트 정상에 올랐고, 〈Let's Go Crazy〉가 2주간, 〈When Doves Cry〉가 5주간 싱글 차트 정상에, 타이틀곡〈Purple Rain〉2위, 〈I Would Die 4 U〉8위, 〈Take Me With You〉25위에 오르는 등 5곡의 싱글 히트곡을 쏟아냈다. 「Purple Rain」의 열기가 아직 수그러들기 전인 '86년 6월, 프린스는 1년만에 새로운 앨범 「Around The World In A Day」를 발표했고, 또 다시 차트 정상에 올랐다. '80년대 중반 프린스는 주체할 수 없는 창작열에 불탔고, 세상은 능력있는 그를 원하고 있었다.(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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