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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P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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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0대 락명반

LP 포럼 시리즈

 

 31. Led Zeppelin

       [Led Zeppelin] (69)

 레드 제플린의 위대한 점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 하나를 들자면 첫 앨범부터 이렇게 훌륭하고 이렇게 완벽해도 되냐는 거다. 자기 손으로 멤버들을 끌어모아 이 앨범을 자기 돈을 들여 직접 프로듀스한 지미 페이지에게 큰 절을 하번 올림직하다.
  여기에 담긴 제플린의 음악은 100% 새로운 건 아니다. 수록곡의 절반은 블루스와 포크의 리바이벌이며 강한 드라이브가 걸린 기타 사운드에 관해서라면 이미 핸드릭스가 나온 지 2년이 지난 후인데다, 샤우트 창법은 당시에 유행이었고 화려한 드럼 연주는 후의 키스 문이 보여줄 거 다 보여주고 난 다음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들 네 명이 함께 내는 사운드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다는 것이다. 혼연일치란 말을 만든 사람이 누굴 보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제플린을 봤다면 역시 같은 말을 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첫 곡 〈Good Times Bad Times〉나 〈Communication Breakdown〉, 처절한 마이너 곡 〈 Babe, I'm Gonna Leave You〉도 좋지만 진정한 앨범의 백미이자 앞으로 제플린이 '크게 될 분들'임을 알려주는 건 바로 〈Dazed And Confused〉일 것이다. 최고의 감독(지미 페이지)에 당대 최강의 선수들. 결국 그들은 10년간 리그를 평정했다.(윤병주)

 

 32. Boston

       [Boston] (76)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MIT) 출신의 공학도 탐 슐츠를 주축으로 브래드 델프, 배리 구드로, 프랜 시핸, 시브 해시언으로 구성된 5인조 밴드 보스톤의 데뷔앨범.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싱글차트 5위로 뛰어오른 첫 싱글 커트곡 〈More Than A Feeling〉을 시작으로 〈Long Time〉, 〈Peace Of Mind〉등 후속 싱글들이 줄줄이 히트를 치며 90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 앨범의 가장 매력적인 구매 요인은 록 음악이면서도, 완벽하리 만치 탄탄한 곡 구조와 사운드 그리고 그 섬세한 멜로디 라인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기획은 사전에 철저히 조율되고 계산된 프레이즈에 한음 한음 쌓아올려간 탐 슐츠의 공학도로서의 꼼꼼함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데뷔 앨범의 그 더없이 아름다운 코러스 하모니와 깔끔한 트윈 기타의 앙상블은 "지나치게 계산되었다."는 비판의 소지를 안고 있다. 실상 록의 커다란 미덕인 '살아 숨쉬는 즉흥 연주가 실종'되었던 때문이다.
  이 음반이 화제가 됐던 또 하나의 이유는 기타 톤 때문이었는데, 건조하면서도 묘하게 기름진 그 디스토션이 걸린 매력적인 음색은 그 때가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색이었다. 물론 그 픽업은 공학도였던 탐 슐츠가 제작하여 기타에 장착한 자작품이었다. 이후 그의 기타 음색은 보스톤과 탐 슐츠의 트레이드 마크로 뮤지션과 일선 기타 제작사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탐 슐츠는 그 픽업 제작 기술의 비밀을 공개하는 대신, 직접 기타 픽업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를 설립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의 이런 학구적인 자세는 그와 보스톤의 음악에도 짙게 투영되어 있으며, 그는 '록 역사를 통틀어 가장 계산적이고 빈틈없는 프레이즈를 들려준 스튜디오 뮤지션 중의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박신천)

 

 33. The Stone Roses

       [The Stone Roses] (89)

 영국 북부의 억양과 발음은 언제나 낯설다. 아마도 가장 이질적인 영어 발음중 하나일 게 틀림 없다. 오아시스 두 형제가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자면 코카서스 지방 설인들의 대화처럼 여겨질 때가 대부분이다. 스톤 로지즈의 음악은 이토록 영국 북부처럼 지독하고 낯설게 다가섰다.
  '89년 오랜 무명 시절의 마감을 의미하는 스톤 로지즈의 데뷔 앨범은 한창 확산 붐을 이루던 맨체스터 사운드의 특징을 누구보다도 잘 정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이키델릭에서 기초한 맨체스터 전통의 흡입력과 충실한 그루브감을 앞세웠던 맨체스터 사운드는 당시 큰 주류로 각광 받던 런던의 펑큰롤에 비견할 인기 장르로 수 년간 군림했다.
  맨체스터 사운드는 비교적 뿌리가 깊은 편이다. 런던과 리버풀 등에 비해 주목받게 된 시기가 늦은(80년대 전후)감은 있지만 수퍼 밴드들의 발굴을 통해 나름의 연대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조이 디비전, 스미스, 뉴 오더.
  맨체스터 사운드는 펑크, 뉴 웨이브, 모던 록을 이어주는 프론트 라인이었지만 언제나 그 성향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오버 그라운드화되지 못했다. 현재영국에서 오버 그라운드와 똑같은 비중으로 다뤄지는 인디 씬. 맨체스터 사운드가 인디의 모토가 되었다면 스톤 로지즈는 인디의 의미를 크게 부각시킨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매스컴의 인디 앨범 걸작 선정엔 스톤 로지즈의 본작이 여지 없이 정상에 올라있고, '80년대의 가장 큰 뉴스로 스미스의 해산과 스톤 로지즈의 데뷔를 꼽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나른한 몽상이 아닌 현실적인 대안으로 의미가 있다.
  해피 먼데이스가 '매드체스터'란 오명에 약물과 오욕의 역사를 가져온 뉴스 메이커였다면 스톤 로지즈는 사운드의 혁신을 가져온 파이오니아였다. 이제는 영국 수퍼 밴드의 계보를 확산(밴드 해체후 멤버들은 시호시스 등의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였다)하는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 스톤 로지즈. 〈I Wanna Be Adored〉의 뮤직 비디오에 담겨 있던 어설픈 춤 사위는 '80년말 변화 없는 팝 음악계를 조롱한, 혹은 '90년대 모돈 록을 예언한 징표였던 것이다.(이종현)

 

 34. Van Halen

       [Van Halen] (78)

 밴드로서의 밴 헤일런의 '업적'은 로큰롤에 기반한 어메리칸 하드 록 시대의 본격 개막에 남긴 혁혁한 전과와(데이비드 리 로스라는 상징적 카리스마로 대표되는) '유희'로서의 록에 대한 원초적 요구에의 군더더기 없는 접근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밴 헤일런은 창조적 리더이자 혁신적인 기타리스트인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보유하고 있었다.
  피킹을 하지 않고서도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는 혁명적 발상을 구체화시킨 라이트 핸드 탭핑의 충격적 '분출'. 〈Eruption〉이 록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스트루멘틀의 하나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따뜻하고 넉넉한 느낌의 브라운 톤(Brown Tone)을 만들어낸 사운드 메이킹 아이디어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코드 보이싱 패턴 역사도, 록 기타가 에드워도 밴 헤일런에 빚지고 있는 값진 유산이다.
  에드워드 밴 헤일런의 연주는 '계단을 소란스럽게 굴러 내려오다 현관에 이르러 똑바로 착지하는' 것과 같다고 한 어느 평론가의 얘기는, 그의(나이답지 않게) 천진하고 장난스러운 시도가 록의 역사에 혁명을 가져 온 결정적 모티브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그러나 정확하게)설명하는 명징한 사례이다.(박은석)

 

 35. Ozzy Osbourne

       [Blizzard of Ozz] (81)

 Never Say Die」(78)에서의 실망스러운 사운드를 뒤로 한 채 블랙 사바스를 떠난 오지는 새 날개를 달았다. 토니 아이오미나 기저 버틀러의 음습하고 육중한 리프가 아니면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오지 오스본은, 밴드가 새로운 프론트맨 로니 제임스 디오를 맞이하여 성공적인 재기를 이룬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자신의 밴드를 거느리고 발표한 본작을 통해 그 자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제 마치 전설처럼 되어 버린 랜디 로즈의 이름 하나만으로 본작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클래식에 바탕을 둔 그의 프레이즈는 오지의 음울한 목소리에(이상하게도)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리며 곡을 이끌어 나간다. 특히 〈Mr. Crowley〉와 〈Revelation(Mother Earth)〉에서의 클래시컬한 리프와 서사적인 아름다운 멜로디의 조화-〈Revelation〉의 완벽한 사운드 미학적 구조은 흡사 '70년대 아트 록 그룹들이 행했던 곡 전개를 연상케 한다-는 이후의 「Diary Of A Madman」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게 된다.
  유라이어 힙을 탈퇴한 리 커슬레이크와 레인 보우 출신의 밥 데이즐리의 탄탄한 리듬 파트를 바탕으로 콜로시엄Ⅱ, 레인보우 등에서 활동했던 돈 에이리의 건반이 빛을 발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웅장하게 만들고 있다.(김경진
)

 

 36. Bruce springsteen

       [The River] (80)

 아직 CD라는 오디오 포맷이 일반화되기 전인 1980년데 LP 2장 짜리로 발표된 「The River」는 미국의 중산계층의 삶, 그중에서도 외롭고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애환과 약간 삐뚤어진 10대의 방황과 사랑을 가사에 담아 스트레이트한 록 비트에 실어 들려주는 시원한 로큰롤 앨범이다. 내용적으로는 '75년도에 발표한 「Born To Run」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느낌을 주지만 앨범 전체적인 완성도에 있어 한 단계 위의 평가를 받고 있다.
  CD시대인 지금과 달리 LP시절에는 앨범 한 장에서도, 사이드 A와 B로 나누어져 있어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앨범 구성에 지금보다 신경이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물며 2장 짜리에서는 음악이 4번 단절됨으로 음반 한 면마다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고 곡 순서를 정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e River」는 완벽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첫 곡 시작부터 미디움 템포의 〈The Ties That Bind〉로 시작해 라이브 녹음의 곡인 〈Sherry Darling〉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다음 질주하는 듯한 로큰롤을 이어나가다가 발라드 곡으로 끝을 맺는 패턴을 몇 번 반복하는데, 2장 짜리라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린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아직 '메이저'해지기 전의, 그리고 그의 E 스트리트 밴드가 가장 기름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을 때의 작품이다.(신용현)

 

 37. Bob Dylan

       [Blood on the Tracks] (75)

 '트랙 위의 피'란 제목처럼 당시 딜런은 피를 흘리는 고통에 처해 있었다. 월플라워스의 제이콥을 낳은 아내 사라 노운즈와 파경을 맞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60년대의 딜런의 명작 「Bonde On Blonde」가 사라와의 '웨딩앨범'이라면 '75년의 이 음반은 '이혼음반'이다. 그래서일까? 〈Tangled Up In Blue〉나 7분 40초짜리의 대곡 〈Idiot Wind〉등 처절하게 목청을 높이는 곡들이 많다. 아니면 〈Simple Twist Of Fate〉처럼 구슬픈 노래들이다.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60년대의 어쿠스틱 포크 풍으로 되돌아갔다.
  직전의 경향이었던 컨트리 록이나 회고조의 노래에서도 벗어났다. 당연히 '70년대 딜런의 앨범 가운데 '가장 포크적'이다. 딜런 스스로도 과거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일종의 '귀거래사'다. '롤링 스톤'지는 '60년대의 고전 「Blonde On Blonde」에서 보여준 '시적(詩的) 감화력'을 회복한 작품으로 평하고 있다.
  이 앨범으로 딜런과 함께 격동의 시대를 치달아간 베이비붐 세대의 지성들이 다시 딜런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때마침 그들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허탈감에 젖어 있었던 상황. 이 앨범이 그들을 달래주었다. 환희가 걸작을 낳기도 하지만 역시 명작은 슬픔의 소산인 듯. 비평가 폴 넬슨의 리뷰가 인상적이다. "결혼이 깨져가고 공연과 앨범은 언론의 관심 밖이었다. 딜런은 다시 쫓기는 심정에 불안정했다. 그것은 아마도 희소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청취자의 심저를 흔드는 앨범. 그가 '20세기의 지성'임을 웅변하는 문제작이다.(임진모)

 

 38. Led Zeppelin

       [Physical Grafitti] (75)

 레드 제플린이 헤비 메탈/하드 록 이라는 장르로 인해 단순무식 단세포적 리프 메탈 밴드들과 같이 묶이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그들의 음악을 자세히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대가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인 여러 장르의 수용과 융화가 잘 어우러져 있다. 1, 2집에서의 헤비 블루스 록, 3집에서의 브리티쉬 포크 탐구, 4집에서의 정통 로큰롤 구사, 5집에서의 메탈/포크 퓨젼과 레게에의 접근 등 실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행해졌었다.
  「Physical Graffiti」는 '75년 발표된 통산 6집으로서 정규 앨범중 유일한 더블 LP발매의 대작이다. 제플린의 사운드가 실험성과 웅대함이 실린 헤비 사운드로 정의된다면 이 앨범을 가장 레드 제플린적인 앨범이다. 〈Stairway To Heaven〉이나 〈Rock & Roll〉과 같이 라디오 전파를 잘 타는 인기곡은 없지만 앨범 전체 구성력이 뛰어나고 초기의 헤비 블루스로의 회귀가 느껴지는 작품으로 많은 제플린 팬으로부터 최고 명반으로 꼽힌다. 여기에 수록된, 제플린의 실험 정신을 대표하는 곡 〈Kashmir〉는 중동 풍의 선율을 시도하여 그들의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또한 11분의 대곡 〈In My Time Of Dying〉, 〈Trampled Under Foot〉등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제플린의 정신은 헤비 메탈의 최전성기인 '80년대 밴드들보다 오리려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밴드들에게서 더욱 진한 감이 있다. 사운드 가든은 대표적 예로서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제플린적 체취가 역력하다. 최근 등장한 신인 중에서는 토닉(Tonic)이 대표적으로 역시 제플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것은 2장의 트리뷰트 앨범에서도 마찬가지여서, '80년대 메탈맨들이 참가한 최근의 「Stairway To Heaven」보다 얼터/모던 록계가 대거 참여한 '96년의 「Encomium」이 훨씬 음악적으로 뛰어난 감이 있다. 아마도 제플린의 정신은 단순한 스타일의 답습보다는 오리지넬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Physical Graffitti」는 이런 점에서 가장 '90년대적인 레드 제플린 앨범이다.(정원석)

 

 39. The Rolling Stones

       [Sticky Fingers] (71)

 지구상에서 록을 듣는 수많은 사람들을 딱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한 쪽은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는 사람들, 나머지 안 쪽은 이해 못하는 사람들, 이 두 종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록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롤링 스톤즈라는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또 우리 나라의 록팬들이라면 〈Angie〉나 〈As Tears Go By〉 정도는 금방 그들의 대표곡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롤링 스톤스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게 되려면 블루스, R&B, 컨추리 음악 등의 폭넓은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록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서 얻어진 록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한 방향으로 모아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Stoclu Fomgers」라는 앨범은 '60년대를 지나 혼돈의  '70년대, 비틀즈 분열의 틈을 타서 록계를 제패하려는 야망에 가득찬 앨범이라는 발매 당시의 평가 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앨범이고, 불후의 명곡 〈Wild Horses〉을 세상에 내보낸 작품이라서 롤링 스톤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앨범이다.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롤링 스톤즈가 록의 전부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스톤즈 속에는 록의 모든 것이다 있다!(신용현)

 

 40. Neil Young

       [Rust Never Sleeps] (79)

 'A면은 어쿠스틱, B면은 앨렉트릭'이라는 2원 구조를 갖고 있는 그런지의 대부 닐 영의 LP시절 명반이다. 음반의 시작 〈My My, Hey Hey(Out Of The Blue)〉와 끝〈Hey Hey My My(Into The Black)〉이 절묘한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는 이 음반은 섹스 피스톨스의 해산으로 사실상 종언을 고한 펑크 시대에 대한 고참으로서의 경의를 담고 있는 앨범이다. 환언하면 펑크가 음악계에 몰고 온 그 거센 소용돌이에 대한 고참의 해석판이요, 'Punk Will Never Die'의 정신을 일깨우는 경의의 헌사품인 셈이다. 그리고 그의 미래에 대한 이 혜안은 작금에 이르러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비록 그 시대 정신은 벗어버리고, 그 외피만을 뒤집어 썼으나 네오 펑크가 일대 돌풍을 몰고 왔고, 그 보다 더 큰 물결, 얼터너티브가 90년대를 뒤흔들었다.
  얼터너티브를 견인한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사망했을 때, 그가 남긴 지상 최후의 말은 그의 아내 코트니 러브에 대한 사랑의 맹세도, 잘먹고 잘살아라의 'Fuck You'도 아니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단지 이 앨범의 싱글 〈My My Hey Hey〉의 가사 중 한 구절 - "서서히 시드느니 차라리 불타 없어지는 게 낫다." - 만이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닐 영의 아픔은 아는지 모르는지, 뒤늦게 이 앨범이 품귀 현상을 맞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의 행로와 음악여정은 철저한 자기중심이었다. 그는 대중과 타협하지도 않았으며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음악으로 대중을 유혹한 일은 더더욱 없으며, 음반사에 값싼 미소를 던지는 추태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앨범들은 언제고 일정한 상업적 성과를 거둔다. 늘 깨어 있고자 노력하는 그의 고뇌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 열렬 팬들의 수가 결코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비록 그의 변신의 과정을 놓고 평자들의 분분한 평이 양극단을 달리긴 하지만, 그가 음악계에 짙게 드리운, 그리고 아직도 그 끝을 놓지 않고 있는 치열한 시대정신의 노력은 결코 평하될 수 없다. 그는 록계의 'Die Hard'다. 이 앨범을 그것을 백마디의 웅변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박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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