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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P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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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0대 락명반

LP 포럼 시리즈

 

 

91. beastie boys

       [Licensed to Ⅲ](86)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311, 벡, 서태지, 김종서, 패닉, DJ DOC등이 공통적으로 영향받 은 아티스트는? 바로 이 비스티 보이스(이하 비스티스)다. 비스티스가 최초로 힙합을 시도한 백인들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중적으로 이들 이전에 알려진 백인 래퍼들은 없다. 그리고 이 앨범은 흑백을 통틀어 최초로 넘버원을 획득한 랩 앨범이다. 그러나 이런 차트 액션 등을 떠나 이 작품이 얼마나 팝 역사상 획기적이었나 하는 사실이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데뷔 앨범 이전에 이들은 하드 코어 펑크 밴드였었고 자신들의 홈 타운에서 조금 알려진 존재였었다. 그런 이 세 악동들이 갑자기 음악적 노선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비스티스는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고 '80년대 초·중반에 10대 시절을 보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완벽히 힙 합 혁명의 세례를 받은 것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브루클린은 힙 합의 탄생지이자 성지(聖地)이다. 자신들 주위의 흑인 청소년들이 역동적인 리듬에 맞춰 쉴 새 없이 지껄이는 언어의 유희가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쿨(Cool)했던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선택한 이들은 운 좋게도 릭 루빈이라는 지지자를 만나 순풍에 돛을 달게 된다.    릭 루빈은 백인으로서 힙 합의 성공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한 뛰어난 프로듀서이자 레코드사 사장이었다. 당시 데프 잼이라는 새로운 레이블을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는 퍼블릭 에너미, LL Cool J등을 스타덤에 올려놓는다. 아티스트와 프로듀서의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낸 이 앨범은 언제 들어도 그 다이내믹한 비트와 래핑 이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하드 코어 시절의 비스티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메탈 리프가 곁들여져 있어 흥미롭다.
  이 작품 이후 흑인이 아닌 수많은 청소년들이 힙 힙을 시작하게 됐고 랩 메탈이라는 새로운 장 르가 탄생하였다. 심지어 이 한반도에서도. (정원석)

 

 92. lYNYRD SKINYRD

       [Pronunced Leh-nerd         Skin-nerd] (73)

 전설의 서던 록 밴드 레너드 스킨너드의 데뷔 앨범. 이 앨범으로 레너드 스키너드는 서던 록의 태두로 군림하고 있는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카리스마를 유일하게 뛰어넘은 최강자로 떠올랐다. <Tuesday's Gone>, <Simple Man>, <Free Bird>는 록의 명곡으로 남았고, 이 앨범은 서던 록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레너드 스키너드는 록 역사상 미국 남부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낸 그룹이다. 블루지하고 부 드러운 감성의 서던 록을 구사한 올맨 브라더스 밴드에 비해, 레너드 스키너드는 힘과 에너지로 가득한 서던 록을 만들어 냈다. 투박하지만 낙천적이고 또 호쾌한 남부의 기질을 록 격전지의 주 역으로 등장시켰던 것이다. 특히 이들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트리플 기타 체제를 도입해 화려한 기타 사운드로 팬들을 매혹시켰다. 세 대의 기타가 자웅을 겨루듯 쏘아대는 격정적인 애드립의 <Free Bird>는 팬들을 흥분상태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후의 서포트 밴드로 시작된 이들의 라이브 밴드로서의 세계적인 인기와 명성은,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77년 10월 20일 비행기 사고로 보컬리스트 로니 밴 잰트와 기타리스트 스티브 게인즈, 백 보컬리스트 케시 게인즈 등 세 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중상을 당하는 참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형 참사로 밴드는 해산되고, 이들의 분신인 로싱톤 콜린스 밴드외 38 스페셜은 그 영광을 재현해내지 못했다. 길지 않은 기간 '73년 9월-'77년 10월 활동했으나, 그들의 영광은 이제 비극적인 전설로 남았으며, 이 앨범은 레너드 스키너드의 진혼곡으로 팬들의 가슴에남았다. (박신천)

 

 93. Guns & Roese

       [Appetite for destruction] (87)

 건스 앤 로지즈는 '80년대 중반 L.A.. 지역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던 많은 하드 록/헤비 메탈 밴드 중의 하나로 '80대 후반과 '90대 초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록 밴드로 성장한다. 이들의 음악적 특징은 롤링 스톤즈나 에어로스미스 같은 노장 그룹의 부기 스타일을 그 악명 높았던 펑크의 정신으로 연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완벽한 복고적인 경향은 그전까지 LA.를 지배했던 메탈과는 차별성을 갖게 되는데, 결국 이 건스 앤 로지즈의 세력이 팽창함에 따라 종전의 L.A. 메탈은 자취를 감추고 복고적인 성향을 갖는 다양한 록들이 '90대에 등장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건스 앤 로지즈의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우선, 등장과 함께 미디어에 무성한 화제를 쉴 새 없이 제공한 액슬 로즈라는 강력한 프론트맨이 있다는 것이다. 액슬 로즈는 부드럽게 중얼거리는 듯한 도컬부터 울부짖듯이 강력한 목소리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실력 면에서도 프론트맨의 자격이 충분하다. 게다가 슬래쉬와 이지 스트래들린 두 명의 기타 시스템이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차드와 믹 타일러 콤비에 필적할 만큼 효과적인데, 넘버 원 히트에 빛나는 <Sweet Child O'Mine>을 들어보면 그 강점을 만끽할 수 있다.
  '87년에 발표된 이들의 데뷔 앨범은 에어로스미스의 오프닝 밴드로서의 투어 활동과 MTV의 지원에 힘입어서 이듬해에 차트 정상에 오르고, 비로소 건스 앤 로지즈의 화려한 성공의 시기가 열리게 된다. (김우석)

 

 

94. David bowie

       [Changes one bowie] (73)

 

 해적판 시절 데이빗 보위의 앨범 가운데 우리 록 팬들에게 가장 친숙한 음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요곡들을 망라한 매력적인 '컴필레이 션' 앨범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왕성하게 활동중인 아티스트가 히트곡 모음 앨범을 내는 일이 드물었다. 마침 그때는 보위가 <Fame>을 싱글 차트 1위에 올려 그에 대한 팬들의 호기심이 증가하고 있던 때였다. 당연히 본 작은 '보위의 개론서' 역할을 했다. 많은 록 팬들이 이 앨범으로 보위의 존재와 음악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컴필레이션 앨범은 결코 상업성 제고를 겨냥한 상투적 베스트 모음집이 아니었다. 그는 전 에 자신에게 부착된 지기(Ziggy)의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한 '고별작'으로 이 앨범을 구상했다. 그의 특허 상표는 양성체(兩性體)의 지기 이미지를 낳은 이른바 글램(Glam)이었다. '시각적 효과' 를 중시하는 글램의 대전제는 무대였다. 하지만 보위는 잠정적으로 무대를 떠나고 싶었다. 온통 뇌리에는 '스튜디오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했다. 그것은 곧 '자극' 에서 '뮤지션쉽과 예술성' 으로 방향을 옮겨가는 음악적 전향을 의미했다. 글램에 대한 '발전적 해체' 라고 할까 ?
  후대에의 영향을 고려할 때 수록곡은 가히 '초호화판 <Space Oddity>, <Jean Genie>, <Changes>, <Golden Years>를 비롯, 전에 싱글로 소개되지 않은 게이 찬가 <John, I'm Only Dancing>도 실려 있다. 이 앨범 이후 보위는 전위적 아티스트 브라이언 이노와 손잡고 일련의 공작을 발표하게 된다. 하지만 보위의 팬들은 이 앨범의 수록곡을 보석처럼 더 애지중지 했다.(임진모)

 

 95. Alice in chain

       [Dirt] (95)

 둠 메탈보다 더 가라 앉았고, '60년대 말엽의 플라워 무브먼트 만큼 사이키델릭하며, 스래쉬 메탈의 공격성을 갖춘 데다, 데스 메탈보다 더욱 심도있게 죽음을 논하고, 그 내재된 분노의 무게 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그들이 뽑아내는 멜로디는 누구보다도 수려하다. 바로 앨리스 인 제인스. 아직 세 장의 앨범 밖에 내놓지 않은 그들이지만 앞으로의 활동 여부에 상관없이 두 번째 앨범 「Dirt」는 길이 기억될 것이다. (윤병주)

 

 96. Oasis

       [(What's he story)Morning          glory?] (95)

 솔직히 100선에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보다는 1집 「Definitely Maybe」가 선정됐으면 했다. 데뷔 앨범보다 나은 2집은 없다' 란 고정관념 때문이기도 하겠지 만, 2집은 이제껏 각종 지면을 통해 너무도 지겹게 울궈 먹어졌고, 나이트 클럽 블루스 타임에도 울려퍼질 정도의 범민족 인기 앨범이기에 그다지 새롭게 언급할 것도 없다.
  '96년 여름, 영국 잡지만 펼치면 등장했던 오아시스와 블러의 '브릿팝 내전'. 오아시스가 이겼고 세계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뻔한 레퍼토리가 이젠 팝 역사의 한 자리에 중요하게 기술되고 있는 실정이 돼버렸지만, 당시 여러 상황을 고려하자면 블러는 이미 오아시스의 스파링 파트너로 의미가 없었고, 결과 역시 뻔한 게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매니아 노선을 걷기 시작한 블러의 4집과 대중 노선을 추구한 오아시스 2집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단 얘기다.
  오아시스는 비틀즈, 롤링 스톤즈, 폴 웰러 등의 선배들을 답습하며 음악성과 대중성이 교차할 수 있는 합일점에 다가서기 시작했고, 고전들의 카피와 흡수를 통해 영국석권과 미국 진출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
  본작을 통해 쏟아진 싱글은 모두 4개. 이 중 <Don't Look Back In Anger>를 제외한 3개의 싱글이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싱글과는 상관없이 두 곡의 비디오 클립이 더 제작되었다. 최초의 넘버 원 싱글이 된 <Some Might Say>는 티 렉스의 흔적을, 미국 모던 록 차트를 강타한 <Wonder Wall>은 조지 해리슨의 이미지 카피를 보여주며 세대를 이어주는 밴드 오아시스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종현)

 

 97. Red hot chili peppers

       [Blood sugar sex magik] (91)

 솔직히 이 앨범이 100장의 리스트에 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치 못했었다. 물론 이 작품이 잘 만들어진 록 앨범이고 그들 경력의 베스트이며 (당연히)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사적(史的) 의미에 있어서의 비중은 상당히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앨범은 제인스 어딕션의 「Ritual De Lo Habitual」과 너바나의 「Nevermind」사이에 샌드위치 마크를 당함으로써 얼터너티브 시대의 과도적 단계에서 어정쩡하게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페이스 노 모어와 수어사이덜 텐던시스 등 헤비메탈/하드 코어 계열과의 연관성으로 그 위상이 미묘한 상태였던 것이다.
  게다가 밴드와 앨범의 지명도 확산이 그들 본래 색깔과는 거리가 있는 싱글 <Under The Bridge>의 깜짝 히트로부터 결정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그 풍요로운 리듬과 농담 같은 개성이 여전히 대중성과 영향력 사이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본고장과 다르다는 점에서라면 이 결과는 승복할 수밖에 없다. 얼터너티브 유입 초기의 그 강렬한 인상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앨범은 여전히 프로토타입으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박은석)

 

 98. The beatles

       [Rovolver] (66)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개념으로서의 록이 태동하여 활발히 진화를 이루던 시절, 진정 진보 인 다양한 시도와 방법의 도입으로 록을 더욱 풍성한 모습으로 일구어 놓은 아티스트 또는 그룹을 꼽는다면 비틀즈는 단연 그 선두에 설 자격을 갖춘다. 스트링과 브라스 등 고전 음악적 요소 차용이라든지 멜로트론, 테이프 역회전, 뒤틀린 사운드의 배치 등 스튜디오에서의 혁명적인 시도 등은 그들을 위대한 이름으로 만드는 데 한몫을 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러한 '실험' 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그 방면의 전형(典型)을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Rubber Soul」을 통해 아이돌 스타로서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면, 「Revolver」는 <Love Me Do>, <Yesterday>등으로 대표되는 초기에서 <A Day In 1 Life>, <Strawberry Fields Forever>, 그리고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Because>등 중후반기 명곡들로 넘어가는 발판 역할을 했다 할 수 있다 레너드 번스타인도 극찬했던 <Eleanor Rigby>의 선율적인 아름다움과 완벽한 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의 조화라든지 <Here, There And Everywhere>와 <For No One> 에서의 달콤함, <Norwegian Wood>의 연장선상에서 이후 <Within You Without You>로 이어 지는 라가(Raga) 록 <Love You To>, 존 레논 의 환각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후 사 이키델릭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She Said, She Sald>, <Tomorrow Never Knowsr>등 앺으로의 커다란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 된 앨범이다 클라우스 부어만의 탁월한 킨더 아트워크 또 한 비틀즈의 모든 앨범들 중 최상의 자리를 차지 할 만하다. (김경진)

 

 99. Elvis Costello

       [This year's model] (69)

 '77년의 런던에는 섹스 피스톨스나 클래쉬와  같은 과격파 정치적 밴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런던의 펑크 씬에는 실로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했고 그들 나름대로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있었.
  미디어의 편의에 의해 기존의 팝 음악과 다른 새로운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도매급으로 펑 크, 뉴 웨이드로 불렸고 그 레테르는 지금도 계속 따라 다닌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데뷔 당시 분명히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의 정서를 지니고 있었지만 단순히 펑크, 뉴 웨이드로 불리기에는 억울한 점이 많은 뮤지션이다. 오히려 그를 더 잘 표현한 용어는 싱어송라이터일 것이다.  그의 음악 여정을 살펴보면 너무나 다양한 음악적 시도에 감탄하게 된다. 초창기의 록큰롤 스타일, '80년대 중반의 소울과 컨트리 탐구, '90년대의 클래식 섭렵까지 그가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영·미 언론은 그를 현존 최고의 뮤지션 중 한 사람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상대 적으로 국내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소개되긴 못 했고 그긴 이름 정도나 알려진 뮤지션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두드러진 것이 미국 싱글 차트 위주의 국내 팝 풍토 와 가사의 이해가 안된다는 점이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데뷔 당시부터 냉소적이고 지적인 가사로 한 몫했던 뮤지션 이다. 한마디로 문학적인(Literate) 아티스트다. 이번 100선 앨범에 그의 작품이 3장 이나 포함되어 있어 고무적이며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를 바란다.     이 작품 「This Year's Model」은 '78년 발표된 그의 2집으로서 오른팔과도 같은 백밴드 어트렉션스와 함께 한 첫 작품이다. 초창기 그의 특징인 간결하고 경쾌한 록 비트와 조롱하는 듯한 창법에 실린 페이소스 넘지는 가사가 빛난디 <Pump It Up>과 <(I Don't Want To Go To) Chelsea>등이 대표곡이고 그의 전 작품 중에서도 가장 록적인 음반이다. (정원석)

 

 100. The Wallflowers

         [bringing down the horse] (96)

 여기 우리가 뽑은 100장의 록 앨범 리스트가 월플라워스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아메리칸 록의 자존심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비슷한 성향의 뮤지션들 - 브루스 스프링 스틴, 존 멜렌캠프, 톰 페티, 밥 시거- 에 대한 박정한 평가가 인지상정이었던 시대가 바로 엊그제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닌가?
  물론 이 앨범은 장르별 지분을 할당받은 낙하산이 아니다. 이 앨범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강경 한 메시지의 나열도 없고, 대중들을 경악케 할 만한 사운드의 혁명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은 여기 이 자리에 당당하게 설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여기에는 청자를 사로잡는 그 무언가가 있다. 선율의 안팎을 둘러싸고 있는 그 긍정적이고 미묘한 에너지는 구체적 언급이 불가능 하고, '록의 위대한 작품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운에 의해 기적저럼 완성된다' 는 추상적인 논리의 취약성은 어느새 진리가 된다. 이 밴드의 리더가 밥 딜런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몰라도 좋다. 고집스러운 표정을 제외하고 제 이콥 딜런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수혜를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대중친화적(상업성 지향적이라는 말과는 엄연히 다른) 편안함을 갖춤으로써 밥 딜런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로부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박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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